특행기관 이관, 분권의 문 여는 첫단추
국가사무 일괄이양 시험대
통합특별시에서 길 찾는다
정부가 광역지방정부 행정통합을 선택한 지역에 대해 대규모 재정·제도 인센티브를 제시하면서 전국의 통합 논의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번 인센티브는 단순한 지원책을 넘어 권한 이양과 재정 구조, 지방정부 위상까지 함께 재설계하겠다는 점에서 기존 통합 논의와 결이 다르다. 내일신문은 정부가 제시한 행정통합 인센티브 가운데 특히 주목해야 할 정책을 분석해본다.<편집자주>편집자주>
정부가 행정통합 지방정부에 제시한 인센티브 가운데 가장 구조적인 변화로 꼽히는 대목은 특별지방행정기관(특행기관) 이관이다. 지방자치 시행 이후 수십년간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중앙부처 저항과 제도 미비로 번번이 좌절됐던 과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통합특별시를 대상으로 한 ‘묶음 이관’ 방식으로 다시 테이블에 올랐다. 행정통합 인센티브가 단순 재정지원에 그치지 않고 국가–지방 권한 구조를 손대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 16일 행정통합 인센티브 발표에서 통합특별시 내에 설치된 국가 소속 특행기관의 사무를 지방으로 이관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구체적인 이관 대상은 특별법 제정 이후 국무총리 소속 통합특별시 지원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구상이다. 중앙정부가 특행기관 이관의 원칙과 틀을 먼저 제시하고 세부 조정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지지부진했던 특행기관 이관 = 특행기관 이관은 새로운 과제가 아니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출범 이후 중앙과 지방의 기능 중복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특행기관 정비 필요성은 거의 모든 정부에서 국정과제로 다뤄졌다. 그럼에도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특행기관 정비가 지체된 핵심 원인으로 중앙부처의 소극적 태도, 개별 법률 개정의 어려움, 인력·재정 동시 이관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특행기관은 중앙부처 조직의 외연이자 권한 행사 통로로 기능해 왔다. 지방으로 이관될 경우 조직 축소와 권한 약화를 우려하는 중앙부처의 반발이 반복됐다.
입법 구조도 걸림돌이었다. 특행기관 사무를 이관하려면 부처별 개별 법률 개정이 필요해 논의가 장기화됐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내용이 후퇴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지방 입장에서도 인력과 예산이 함께 따라오지 않는 ‘사무만 이관’에 대한 우려가 컸다. 실제 제주도의 경우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국토관리 도로 환경 등 일부 국가사무를 넘겨받았지만 재정과 인력이 충분히 따라오지 않으면서 내부에서 “예산이 없다면 다시 국가로 돌려줘야 한다”는 문제 제기까지 나왔다.
◆통합특별시, 일괄 이양의 실험장 = 이번 정부안의 특징은 특행기관 이관을 개별 지방정부가 아닌 통합특별시라는 새로운 행정단위에 묶어 시도한다는 점이다. 광역단위 생활권·경제권을 전제로 행정통합이 이뤄지는 만큼 단일 지방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광역적 국가사무를 이관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됐다는 판단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특행기관 사무가 단일 행정구역을 넘어 권역 단위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며 “행정통합은 이런 사무를 맡길 수 있는 최소한의 행정·재정 역량을 갖춘 단위”라고 설명했다.
통합을 전제로 한 특행기관 이관은 사실상 국가사무 일괄 지방이양의 시험 모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권선필 목원대 교수는 “특행기관 이관은 지방분권의 상징처럼 이야기됐지만 실제로는 중앙정부가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권한이었다”며 “이번 통합특별시 구상은 특행기관 문제를 개별 부처 협의가 아니라 한번에 정리할 수 있는 드문 기회”라고 말했다.
관건은 인력과 재정의 동반 이관이다. 국회입법조사처도 특행기관 이관의 성공 조건으로 △정권 초반 단계별 실행계획 수립 △국가직 공무원의 지방공무원 전환 과정에서 인사상 불이익 방지 △사무 성격에 따른 재원 이전 방식 정비 등을 제시한 바 있다.
특히 국가직 신분 전환 문제와 특별회계·기금이 연계된 사무의 재정 처리 방식은 여전히 민감한 쟁점으로 남아 있다. 지방정부 한 관계자는 “특행기관 사무 이관 자체보다 그 사무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재정 이전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또 다른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조 전환’으로 가는 전환점 = 특행기관 이관이 이번 행정통합 인센티브에서 핵심 축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방분권 논의가 수십년간 필요성만 반복해온 장기 과제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대상과 절차를 전제로 한 제도 설계 단계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통합특별시 지원위원회 설치와 특별법에 따른 일괄 조정 구조는 과거 부처별 협의에 의존하던 방식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전문가들은 특행기관 이관이 실현될 경우 행정통합의 성격 자체가 달라질 것으로 본다. 행정구역을 합치는 수준을 넘어 국가 기능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통합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행정통합 인센티브 가운데 특행기관 이관이 ‘분권의 문을 여는 첫 단추’로 평가받는 이유다. 하동현 전북대 교수는 “기존의 특행기관 이관은 중앙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만이 아니라 지방정부들간의 인식과 이해관계 충돌도 문제였다”며 “통합은 이런 걸림돌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중앙정부도 권한 이양을 주저할 명분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